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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와 행동의 폭을 확장하는 지렛대 `문화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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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화는 이미 구식 용어이고 초연결 사회로 전 세계 어디서든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으며 고령화로 인해 더 많은 세대가 함께 일하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은 점점 더 나와는 다른 세계, 나와는 다른 경험, 나와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확대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문화지능(Cultur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국민에게 연설할 때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인종 차별 제도)를 철폐하는 것보다 다인종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더 강조했다.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결국 국민에게 위험한 정치적 공백만이 남겨질 것이라 통찰했다. 
    그래서 국민의 에너지를 미숙한 국가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보다 궁극적 목표로 삼는 이상적 국가를 만드는 데 집중시켰다. 그 결과 평화적인 변모를 이끌어냄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다인종 의회가 생겼다. 이 사례는 국가 차원의 문화지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지능이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소통하며 적응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즉 개인이 속해 생활해 온 문화와 다른 문화와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적절하게 대응하는 능력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나 다문화 환경(다양한 문화권의 인력들로 구성된 모임, 조직 등)에서 특히 중요하다.
    문화지능은 국가 차원보다 기업 차원에서 더 많이 다뤄지는데 이는 기업의 외적 성장뿐 아니라 내적 성숙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악화일로에 있는 경영 환경을 탈피하기 위해 기업들이 글로벌 확장과 비즈니스 성장 기회를 지속적으로 모색함에 따라 특정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 다문화 팀의 효과적인 운영이 핵심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2023년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조직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문화 다양성 관리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 팀 구성원들의 문화적 역량 개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기업의 성장을 위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기업 간 인수합병(M&A)이 일반화되고 있는데 여기서 핵심 이슈가 인수 후 통합(Post Merger Integration : PMI) 과정이다. 자국의 다른 기업과의 합병도 이슈가 되는데 타국 기업과의 합병은 말할 것도 없이 문화적 충돌을 동반하는 경우가 생긴다. 실제로 인수합병이 실패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문화적 차이다. 문화지능이 높은 기업은 이러한 차이를 인식하고 조정해 통합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기술 발달과 팬데믹의 영향으로 확산된 재택근무는 이제 유연근무제나 하이브리드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 역시 문화지능에 대한 니즈를 증가시킨다. 
    맥킨지는 하이브리드 업무 환경이 정착됨에 따라 서로 다른 원격 팀 간의 문화적 충돌을 예방하고 협업을 증진하기 위해 문화지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온라인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또 조직 내에서 다양성, 형평성과 포용성(DEI) 관련 이슈도 지속적으로 제기되는데 언스트&영(EY)은 문화지능이 다양성과 포용성 프로그램의 성과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글로벌 기업들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직장에서 평등하게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문화적 차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한다고 소개한다.
     



    문화지능의 구성 요소

    문화지능은 연구하는 학자에 따라 세 가지 혹은 네 가지의 구성 요소로 분류된다.
    크리스토퍼 얼리는 문화지능을 세 가지로 구분하는데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의미하는 인지적(Cognitive) 차원, 문화적 맥락에 맞는 비언어적 행동이나 제스처를 의미하는 신체적(Physical) 차원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 대해 개방적이고 적응하려는 의지를 의미하는 정서적·동기적(Emotional·Motivational) 차원이 그것이다.
    반면 데이비드 리버모어는 동기적(Motiv-ational), 인지적(Cognitive), 메타인지적(Meta-cognitive) 및 행동적(Behavioral) 요소의 네가지로 구분한다. 
    그에 따르면 동기적 요소란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와 열정을 의미하며 이는 새로운 문화적 상황에서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와 에너지를 포함한다. 인지적 요소란 다양한 문화에 대한 지식, 특히 그들의 신념, 관습, 규범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며 이를 통해 개인은 다른 문화의 특징을 이해하고 행동하게 된다. 
    메타인지적 요소란 자신의 문화적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하고 문화적 지식을 전략적으로 적용하는 능력으로 새로운 문화적 상황에서 적절한 전략을 세우고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여기서의 메타인지란 제3자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지막 행동적 요소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 적합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언어, 제스처, 의사소통 스타일 등에서 적절한 변화를 줄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두 학자의 분류를 비교해 보면 얼리의 신체적, 정서적·동기적 차원은 각각 리버모어의 행동적, 동기적 요소와 동일한 개념이다. 다만 얼리의 인지적 차원을 리버모어는 인지적 요소와 메타인지적 요소로 세분한 차이가 있다. 
    좀 더 세분화된 리버모어의 모델이 적용하기 편해 일반적으로 활용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위의 그림과 같이 동기적 요소는 동기부여(Drive), 인지적 요소는 지식(Knowledge), 메타인지적 요소는 전략(Strategy), 행동적 요소는 행동(Action)으로 변환해 설명할 수 있다.
    결국 문화지능은 다양한 환경에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글로벌 차원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는다. 문화지능이 다문화, 특히 국가 차원에서 많은 관심을 받지만 한 조직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1990년대 이후 직장 내 다양성의 중요성이 커지고 확산됨에 따라 문화지능은 조직 성공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량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이 개념은 개인과 조직 모두에게 필수적인 자산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지능을 높이기 위한 기업들의 노력

    전 세계 175개 이상의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IBM은 ‘글로벌 다문화 팀(Global Multicultural Team)’을 운영한다. 보다 정확한 명칭은 ‘기업 서비스 조직(Corporate Service Corp.)’으로 200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데 공식적인 팀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컨설팅 인력 풀(Pool)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 팀은 IBM 경영진이 선발한 다양한 배경의 다국적 핵심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정 이슈가 발생한 사업이나 지역에 이 팀의 관련 전공자들이 참여하는 개념이다. 다양한 국가와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혁신적인 솔루션을 창출하며 특히 글로벌 프로젝트 수행 시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IBM의 글로벌 운영 전략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팀은 글로벌 협업을 촉진하고 문제를 해결한다. 파견된 이들은 다양한 국가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직원들 간의 협업을 촉진해 글로벌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지원한다. 또한 팀 구성원 자체가 다양한 시각과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현지 인력과의 협력을 통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안한다. 
    이 팀은 파견된 지역의 특수한 요구사항에 맞춘 현지화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지 인력의 제한된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보유한 팀원들의 창의성과 통찰력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IBM은 글로벌 시장에서 현지 고객과 더 깊이 연결되는 기회를 창출한다.
    이 팀의 또 다른 목적은 글로벌 리더십의 강화에 있다. 팀의 구성원은 리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경험과 지위에 있는 사람들로 글로벌 프로젝트를 통해 리더십을 육성하고 글로벌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양성과 포용성을 추구하는 IBM의 문화도 함께 강화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IBM의 문화지능이 높아지고 있다.
    도이치뱅크는 2015년부터 구성원들이 본사의 다른 지사에서 단기 파견 근무를 경험하는 문화 교류 프로그램(Cultural Exchange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직원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직접 일해보며 문화적 차이를 체험하고 문화지능을 실질적으로 향상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글로벌 금융 환경에서 더 나은 문화적 적응력을 갖추게 됐고 이는 글로벌 고객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파견 후 직원들의 문화지능 향상 정도를 내부적으로 평가한 결과 많은 직원이 더 높은 적응력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액센츄어는 2019년 문화 다양성 평가 시스템을 도입해 직원들이 프로젝트나 업무에서 얼마나 문화적으로 포용적이고 다각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지 평가한다. 그 결과는 인사 고과나 승진에 중요한 요소로 반영된다. 이는 직원들이 자신의 성과 평가에서 문화지능과 관련된 항목을 인식하게 됨에 따라 다른 문화권 팀과의 협업 시 더 신중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결과를 이끌고 있다.
    독일의 소프트웨어회사인 SAP는 2018년 직원들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교차 문화 멘토십(Cross-cultural Mentorship)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서로 다른 문화권에 있는 선배와 후배 직원이 짝을 이뤄 서로의 경험과 시각을 공유하며 상호 학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멘토링 과정에서 SAP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문화적 차이를 경험하고 이해하는 데 집중한다. 이를 통해 업무를 넘어서 서로의 문화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고 문화지능 향상은 물론 업무 협업에서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결국은 소통이다

    문화지능은 글로벌 환경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다양성과 협업 측면에서 중요한 자산이다. HR 분야의 글로벌 컨설팅사인 콘페리는 문화지능을 높이기 위한 방법론으로 MASS를 이야기한다. 
    이는 구성원이 올바른 행동을 견인할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Mindset), 목표한 방향으로 맞게 행동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Ability),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와 인사 시스템은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하도록 지원하는지(Systems), 조직의 운영 모델과 구조가 구성원이 원하는 방향과 행동을 지원하는지(Structure) 여부를 의미한다. 즉 사고방식, 역량, 시스템, 구조를 통합적으로 변화시켜 구성원들이 새로운 문화를 내재화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MASS는 앞서 언급한 문화지능의 구성 요소와 유사한 구조다. 사고방식은 동기부여, 능력은 지식, 시스템은 전략, 구조는 행동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 가능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언급되는 사고방식이다. 나머지 요인이 아무리 잘 구축돼 있더라도 사고방식, 즉 태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동은 태도가 선행돼야 한다.
    문화지능이 높은 조직이 되려면 문화지능이 높은 구성원들이 있어야 한다. 문화지능이 원래 높은 구성원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체화할 수 있다. 조직이 이런 사람을 외부에서 데려올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따라서 내부적으로 육성하는 것이 가장 좋은 확보 방법이다. 
    육성은 교육을 통해 가능하나 이것 또한 한계가 있다. 더 좋은 방법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경험이란 곧 만남과 소통을 의미한다.
    조직이 문화지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조직 내 다른 문화 사람들 간에 함께하는 자리를 가능한 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다른 문화라 는 것은 물론 국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 성별, 인종, 출신 지역이라는 가시적 측면뿐 아니라 계층, 세대, 업무 영역 등 비가시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비가시적 측면이 더 강조될 필요도 있다. 조직 내 가장 문제가 되는 부서 간 사일로 현상은 업무 영역 측면에서 문화지능이 낮아 발생하는 대표적 현상이다.
    결국은 소통이다. 앞서 소개한 다양한 사례들이 지향하는 바도 소통 기회를 늘리는 것이다. 가능한 한 자주 많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공감하고 때로는 격의 없이 논쟁도 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조직 차원에서도 문화지능을 키우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